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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정치의 분리: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위한 필수 원칙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월 12일 오후 경북 영천시 청통면 대한불교조계종 10교구 본사 은해사에서 열린‘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요식'에 참석한 가운데, 합장 대신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사진=뉴시스

종교와 정치의 분리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근본적인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개신교 및 가톨릭 내에서는 종교와 정치를 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다원주의와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악화시키고 민주적 절차를 훼손할 위험이 크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의 내면을 살펴보면, 그 본질적 문제점과 위험성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개신교 및 가톨릭 내에서 종교적 가치를 사회에 적용하려는 정치 세력화 시도가 강조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특정 종교의 신념과 가치가 사회 전체에 강요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위험하다.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정치적 접근은 종교적 소수자, 무신론자, 심지어 동일한 종교 내에서 다른 신앙 해석을 가진 사람들까지 억압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신념과 가치가 공존하는 체제이다. 특정 종교가 정치적 영향을 행사하려 한다면, 이는 다원적 사회 질서를 훼손하고 억압적 체제를 조장할 위험을 초래한다. 이러한 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종종 구약 성경이나 예언자 전통이 인용되지만, 이는 해당 텍스트의 본질적 맥락을 왜곡한 것이다. 예언자들은 특정 정치 세력을 강화하려는 목적보다는, 사회적 정의와 도덕적 반성을 촉구하는 데 주력했다. 종교는 개인의 내면적 성찰과 도덕적 지침을 제공하는 역할에 그쳐야 하며,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종교적 가치를 정치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는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종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정교분리 원칙을 일제강점기의 유산으로 간주하고 이를 부정하려는 시도는 역사적 왜곡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정교분리 원칙은 일본 제국주의나 선교사의 산물이 아니라, 교파 간 갈등과 종교 전쟁을 막고 공공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발전한 보편적 원칙이다. 홉스와 로크와 같은 철학자들은 종교의 자유와 정치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교분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 체제를 퇴보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교분리 원칙은 종교와 정치가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독립성을 유지하여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근본적인 원칙이다.

개신교 및 가톨릭 내에서의 정치적 세력화 시도는 현실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여러 차례 창당된 종교 정당들은 국민적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으며, 이는 특정 종교의 정치적 지배를 거부하는 국민들의 의사를 분명히 나타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정치화를 다시 시도하는 것은 대중의 민주적 선택을 무시하는 독선적 시도에 불과하다.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정치 세력화를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종교와 정치가 결합할 경우,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위험이 크다. 종교적 신념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바탕으로 한 공공정책의 기준으로 적합하지 않다. 정치적 결정은 공정하고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지만, 종교적 가치가 이를 지배하면 정치와 사회는 특정 신념에 종속될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인 평등과 자유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는 각자의 독립적인 영역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종교는 개인의 내면적 성찰과 윤리적 지침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정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의사결정에 충실해야 한다. 특정 종교가 정치적 권력을 통해 사회를 지배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로,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정치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종교 본연의 가치를 왜곡하고,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초래하는 사이비적 행위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